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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 임진왜란…〈5〉 의병정신은 대한민국 역사를 관통하는 으뜸정신
경서신문 기자 / 입력 : 2024년 12월 05일(목)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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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에 이어….〉
 |  | | ↑↑ 김 명 호
-전)한국공공정책평가협회 지방자치단체 재정 평가위원
-전)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근무 | ⓒ 경서신문 | 위 시조를 남긴 장수 배설은 전쟁이 끝나고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민심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정권을 잡은 서인 진영과 선조는 모반죄라는 누명을 씌워 죽였다. 말 그대로 사냥이 끝났으니 사냥개를 잡아먹는 꼴이다. 전장에서 왜군들을 베고 죽였던 조선의 장수가 조선 국왕과 서인정권에 의한 자신의 죽음 앞에서 조국의 장래를 염려하며 읊었던 짧은 시 한 수를 더 소개한다.
夕陽之門 路東西 석양지문 로동서 兩家之好 萬福源 양가지호 만복원
위 칠언시는 따로 해설이 필요 없겠다. 그러나 40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청산되지 못하고 지속되는 진영 논리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시대를 살아야하는 우리가 반드시 새겨 들어야 할 경구이다. 임진란이 일어나기 전 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정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의 보고는 상반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전쟁의 책임은 동인에게로 돌아갔다. 동인의 지지를 받아왔던 최고위급 장수는 정쟁의 희생물로 처형되었다. 그날로부터 병조판서 홍여순을 탄핵하는 영남지역 사림(士林)들의 상소가 빗발쳐, 처형당했던 장수는 6년 후 선무원종공신1등에 책록 되었고, 살아남은 전쟁영웅을 모함으로 처형했던 병조판서 홍여순은 훗날 진도로 유배되어 백성들에게 맞아 죽었다. 전쟁이 끝나고 선조는 전쟁 중 불타버린 수군 관아를 새로 세우면서, 대문의 현판을 창을 멈춘다는 뜻으로 ‘지과문(止戈門)’이라 하고, 관아 건물의 현판은 7년 전쟁으로 병기에 묻은 피를 씻는다는 뜻을 담아 ‘세병관(洗兵館)’이라 이름 지어서 앞으로는 이 땅에 다시는 참혹한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나라가 되기를 염원하였다.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431년 전 그날의 의병정신이 우리들 모두의 가슴속에서 되살아나야 하겠다. 우리가 지금 임진년의 교훈을 잊고 외국 군대를 내 땅으로 끌어들여 수차례 전장으로 만들어 이 나라 백성들의 목숨과 피를 제물로 바쳤던 통한의 역사를 지금 단절시키는 일에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는 430년 후 우리의 후손들로부터 재앙의 씨앗을 물려준 역사의 죄인으로 못난 조상으로 다시 기억될 것이다. 임진왜란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저들은 반성보다는 오히려 도발의 빌미로 독도를 택해서 지금도 재침의 기회만을 노리고 있다. 저들을 용서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저들의 과거와 만행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430년 전 100년 전 조상님들의 핏 값을 절대로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 430여 년 전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성주지역 의병활동 상황을 재조명한 '성주임진의병예술제'가 '성주의병창의마을'인 성주군 대가면 도남리 도남재(道南齋) 일대에서 성주지역 주민들은 물론 전국에 흩어져 있는 의병 후손들이 주인공이 되어 올해로 네 번째로 열렸다. 이 행사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과 함께 경상우수사를 지낸 배설 장군의 후손들이 주축이 되어 임진왜란 당시 성주지역 의병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왜군과 맞서싸운 우리 선조들의 의병정신을 재조명하고, 그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후손들에게 애국애족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성주에서 일어났던 의병활동에 대한 기록을 토대로 열리고 있는 이 행사가 점차 확산, 발전되어 현대사회에서도 다시 한번 의병정신의 중심지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왜냐하면 의병정신은 대한민국 역사를 관통하는 으뜸가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끝〉 ※본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 | ↑↑ 성주임진의병예술제가 열리고 있는 성주의병창의마을인 성주군 대가면 도남리. | ⓒ 경서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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