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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철새 비상(飛上)”
경서신문 기자 / 입력 : 2017년 01월 24일(화)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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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동장군이 기승을 부린 지난 19일 성주군 벽진면 자산저수지에서 겨울 진객인 고니를 비롯해 청둥오리 등 겨울철새들이 수면을 박차고 힘차게 비상하고 있다. | ⓒ 경서신문 | |
새들이 우리를 걱정한다
김 수 상
하늘에 길이 있다 새들이 어디를 다녀오는 길이다 천 리 길을 날아서 먹이를 구해오는 중이다 지친 기색도 없이 날갯짓을 하며 허공을 새끼 생각으로 꽉 채웠다
공중에 길이 있다 말은 공중으로 나아간다 우리에게 텅 빈 공중이 없었더라면 사랑의 말을 어디에 풀어놓을 것인가
공중은 비어있어야 한다 비어있는 곳으로 사랑의 말들이 풀씨처럼 내려앉고 비어있는 곳곳으로 꽃씨가 떠다닌다
공중은 인간이 점령하는 공간이 아니다 참외 같이 착한 별빛들이 돋아나는 곳이고 밤중에 길을 잃은 산짐승들이 집으로 잘 돌아가라고 달빛이 제 몸을 푸는 곳이다
하늘에 길이 있다 인간이 점령한 길이다 차가운 금속의 길이며 굉음의 길이다 사랑의 말을 가로막고 창문을 닫아걸게 하는 차단의 길이다 엄마가 아이를 부르는데 아이가 엄마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단절의 길이다
전투기가 뜨고 폭격기가 내려앉는 동안 평화와 사랑의 말들은 어긋난다 전투기가 뜨고 폭격기가 내려앉는 동안 공중의 새들은 길을 잃는다 엔진 속으로 새들이 들어가 비행기를 고장 나게 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새들의 자살공격이다
자연이 있는 사진에서 인간이 건설한 문명을 손가락으로 가리고 보니 아름답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잠시 다녀가는 사람들, 못둑에 피고 지는 풀꽃보다 나을 게 없다 그러니 세상을 사는 동안에 우리는 머리 위의 자유를 마음껏 누려야 한다 우리의 머리 위로 사랑의 말들은 꽃씨처럼 떠다니고 어미 새들은 아기 새들을 데리고 공중을 마음껏 날아다녀야 한다
인간이 하늘 길을 연다고 하는데 그것은 하늘의 법을 어기는 것이다 공항을 유치한다고 하는데 그건 참 유치한 짓이다
새들이 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호수에 모여앉아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고 있다 인간을 걱정하고 있다 인간이 저지를 일들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
김 수 상 1966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2013년 ‘시와 표현’신인상을 받으며 등단 시집으로 ‘사랑의 뼈들’(삶창)이 있다 대구경북작가회의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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